[배구부] [김학수의 사람 ‘人’] ‘대학 선수와 팀이 잘돼야 한국 배구가 잘 될 수 있다“... ’대학교수‘를 겸하는 류중탁 명지대 감독

  • 작성일2022.05.20
  • 수정일2023.04.27
  • 작성자 체*부
  • 조회수407
[배구부] [김학수의 사람 ‘人’] ‘대학 선수와 팀이 잘돼야 한국 배구가 잘 될 수 있다“... ’대학교수‘를 겸하는 류중탁 명지대 감독 첨부 이미지

명지대 용인 캠퍼스로 그를 만나러 가면서 줄곧 화려했던 그의 선수생활을 생각했다. 1980년대 한국 배구는 그를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 지금보다 월등한 세계경쟁력을 갖췄던 때 대표팀과 소속팀에서 에이스로 활약하며 많은 팬들을 열광케했다. 1978년 대신고 3학년때부터 태극마크를 달고 10여년간 대표팀 센터로 뛰었고, 인하대와 고려증권에서 많은 우승을 이끌었다.

명지대 배구팀 류중탁 감독(62). 그에게 오래전 선수시절의 얘기를 건네자 “배구와 함께 산다는 것 자체가 즐겁다. 선수 시절 많은 혜택을 받아 남부럽지 않게 생활할 수 있었다. 국제대회나 국내 대회에서 경기를 하면 배구팬들이 정말 아껴주었다. 지도자가 된 이후에도 주위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명지대의 배려로 2015년 실기교수를 겸하며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선수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한다. 학생을 지도하면서 살아가는 것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대학배구 첫 대회인 U리그 개막을 앞두고 명지대 선수들과 훈련에 여념이 없다. 또 훈련이 없는 때 일반 학생들을 상대로 1주일에 6시간씩 배구 실기 강의를 한다. 감독과 교수라는 두 가지 일을 무리없이 소화해낸다. 그는 배구인으로서의 의무감을 갖고 임하는 자신의 역할이 배구를 발전하게 하는데 조그마한 기여를 했으면 한다고 했다.

류 감독이 배구 지도자로 모델을 삼고있는 이는 의외로 국내가 아닌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일본의 남자배구 우승을 주도했던 미나미 마사유키(1941-2000년)이다. 일본 배구 최고 영웅으로 활약하다 대표팀 감독을 거쳐 말년에는 청소년 선수들을 맡아 지도자 생활을 했던 인물이다. “미나미 감독은 나와 같은 미들블로커(센터)로 뛰며 강력한 공격력도 발휘했던 뛰어난 선수였다. 비록 선수시절은 직접 대결한 적은 없었지만 일본 대표팀 감독으로 재임할 때, 내가 선수로서 자주 뵙었다. 배구를 아끼고 사랑하며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던 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류 감독은 말했다.

그는 국내 대학배구 지도자 가운데 우석대 정기남 감독, 경상 국립대 김형태 감독에 이어 3번째 연장자이다. 어느덧 대학배구 원로급 감독이 된 것이다. 2000년 명지대 감독에 처음 부임한 그는 2001년부터 2003년까지 현대자동차써비스 코치로 잠시 몸을 담았다가 2008년 다시 돌아와 현재까지 재임 중이다. 대학교수 신분으로 65세가 정년인 그는 그동안 하경민(현대캐피탈), 김영석(대한항공) 등을 키워냈지만 명지대를 우승으로 이끌지 못한 것은 가장 아쉽게 생각한다며 앞으로 남은 3년안에 좋은 성과를 한 번 내보고 싶다고 했다. 명지대 선수들과 훈련을 하느랴 바쁜 지난 22일 그를 명지대 용인캠퍼스 체육관에서 만났다. 인터뷰 내내 차분하고 침착함을 유지한 그의 모습에서 대학교수로서의 품격과 뜨거운 열정을 가진 배구 감독으로서의 승부자적인 기질이 짙게 느껴졌다.

교수신분인 류중탁 명지대 감독은 "대학 선수와 팀이 잘 돼야 한국 배구가 잘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지원 기자]


‘감독님, 우리의 감독님’


이날 인터뷰를 전후해 체육관에선 명지대와 송림고와의 연습경기가 벌어졌다. 그는 명지대 출신인 조영일 코치에게 벤치를 맡기며 인터뷰를 하던 도중 세트가 끝나자 잠깐 인터뷰를 중단하고 선수들에게 불러놓아 경기 중에 잘 안된 부분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류 감독의 설명을 경청하는 모습이었다.

-선수들에게 어떤 점을 많이 얘기하나.

“기본기와 팀웍, 인내력과 신중함 등을 많이 강조한다. 기본기가 없으면 개인 실력이 늘지 않는다. 볼을 받아내는 리시브 능력은 어느 포지션 선수든지 갖춰야 한다. 배구는 팀 경기이므로 서로 연결하는 플레이를 잘해야 한다. 당연히 팀 플레이에 잘 맞춰야 좋은 경기를 할 수 있다. 선수들 개인적으로는 인내력과 신중성을 키워야 훈련 중이나 경기 중에 어려운 상황을 만나더라도 잘 이겨낼 수 있다. ”

-선수들이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는데.

“우리 명지대는 이른바 ‘정유라 사건’ 이후 강화된 수업 의무화 조치 이전부터 선수들이 정상적으로 수업을 모두 받고 훈련을 해왔다. 선수들이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는 게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그동안 선배들이 해왔듯이 현재 선수들도 학교 교칙대로 운동과 공부를 같이 하고 있다. 프로팀으로 가지 못하는 선수들을 위해서 대학 때 사회체육과 관련한 자격증을 많이 따로독 권유하기도 한다. ”

-교수 신분으로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는데.

“감독을 하면서 2015년 스포츠팀에 많은 관심을 보이신 유병진 총장님의 배려로 교수로 임용됐다. 학교에 대한 책임감과 의무감을 크게 느끼고 있다. 일반 학생들에게 배구 실기 지도를 하고 팀 성적도 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성실한 자세로 노력하고 있다. 선수와 학생들과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그들의 고민을 이해하려고 힘쓰고 있다.”

그는 “대학 선수와 소속팀이 잘 돼야 한국배구가 잘 될 수 있다”며 자신에게 주어진 대학교수와 감독이라는 두 가지 일에서 나름 보람과 함께 성과도 올려보고 싶다고 했다.

류중탁 감독이 송림고와의 연습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에게 부족한 부분을 지적해주고 있다. [정지원 기자]


한국남자배구의 ‘리즈’ 류중탁

그는 한때 한국남자배구의 ‘리즈’였다.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로 코트를 누볐다. 1980년대는 그의 전성 시대였다. 고교시절 대신고 류중탁, 문용관, 인창고 장윤창은 트로이카로 명성을 떨쳤다. 고교 3학년때 일찌감치 국가대표로 발탁된 이들은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강만수, 김호철 등과 함께 금메달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인하대를 거쳐 1983년 경기대 출신 장윤창과 함께 고려증권 창단 멤버로 입단한 그는 고려증권을 일약 최고 정상팀으로 이끌었다. 고려증권은 현대자동차써비스와 우승을 주고 받았다. 그는 정의탁과 함께 고려증권 중앙을 책임지며 변화무쌍한 공격력을 보이며 팀웍을 주도했다. 국가대표팀 주전으로도 활약하며 화려한 성적을 올렸다. 1978년 세계선수권 4위, 1984년 LA올림픽 5위 등으로 역대 남자배구에서 가장 좋은 국제대회 성적을 올린 주역의 일원이 됐다.

-현역 때 ‘류중탁 하면 파이팅 좋은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중앙을 맡는 선수치고는 키가 1m87로 작은 편이었다. 동기 문용관은 나보다 7-8cm 더 커 블로킹이 좋았다. 자연히 블로킹 보다는 속공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것에 더 주력했다. 파이팅이 좋았던 것은 나 스스로에게 정신력을 불어넣어 주려고 했던 측면이 있었다. ”

-현역 때 일본 배구에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내가 대표선수를 할 때는 뮌헨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 등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 최강으로 군림했던 일본 배구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던 때였다. 일본 배구 영웅 미나미 등이 현역에서 물러나고 나카가이치 유이치 등이 신예로 막 부상할 때였다. 우리 대표팀과 일본 대표팀은 서로 막상막하 경기력을 보였다. 일본에 가서 많은 경기를 했는데 속공, 시간차 공격 등을 많이 배워가며 활용할 수 있었다. ”

-예전과 비교해 현재 한국남자배구는 어떤가.

“우리도 일본 배구의 길을 걷는 것 같다. 예전 세계 최강이던 일본 배구는 유럽과 남미팀들이 파워와 함께 속공 등 빠른 배구를 구사하며 점차 경쟁력을 잃었다. 우리나라도 일본과 같은 스타일을 하다보니 서구팀들에게 밀릴 수 밖에 없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이후 올림픽 본선에 나가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선수들의 체력과 신장은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지만 실전 능력이 전반적으로 부족하다고 본다. 많은 국제 경기 경험을 쌓아 선수들의 경기력이 향상되야 할 것이다. ”

류 감독은 1960년생으로 전남 고흥에서 자라 배구를 하기 위해 서울로 유학, 충암중에서 문용관 감독과 한솥밭을 먹으며 배구를 했다. 20여년간 최고의 선수로서 성공적인 생활을 한 뒤 지도자로서도 명성을 날렸다. 아들 윤식군은 아버지에 이어 프로팀 우리카드에서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부전자전으로 배구인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장가 간 두 아들이 낳은 손녀 딸과 아들의 사진을 핸드폰에 올려놓고 틈만 나면 보는 평범한 ‘할아버지’이기도 하다.

기사제공 마니아타임즈

김학수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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